하수에서 플라스틱을 캐다: PHA 순환공정의 현재와 다음 단계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7기 이희원
하수는 그저 버리는 물이 아니다
하수처리장에서 슬러지(sludge)는 물속에서 가라앉거나 걸러진 찌꺼기(고형물)가 물을 머금은 상태를 말한다. 여기엔 유기물(미생물의 먹이인 탄소)과 미생물 덩어리(활성슬러지 플록), 소량의 모래·무기물 등이 섞여 있다. 공정 단계에 따라 1차 슬러지(침전지에서 모은 큰 찌꺼기), 2차 슬러지(정화 과정에서 늘어난 미생물 덩어리), 소화·농축·탈수 후의 진한 슬러지(케이크)로 나뉜다. 이 슬러지는 그냥 버릴 시 악취, 병원성 및 처리비용 문제가 커져서, 보통 농축→탈수→소화(메탄발효)→자원화/처분의 과정을 거친다.
이 하수처리장의 슬러지 안 유기탄소는 그동안 제거 대상이었지만, 미생물에게는 에너지와 저장재를 만드는 먹이다. 미생물은 먹이인 탄소가 많고, 질소·인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대비해 몸속에 PHA(폴리하이드록시알카노에이트)라는 자연 분해되는 플라스틱 원료를 저금통처럼 모아 둔다. 하수처리장은 이 습성을 이용해 산소가 없는 시간(혐기) ↔ 산소가 있는 시간(호기)을 번갈아 주는 운전 리듬(혐기–호기 사이클)을 만든다. 혐기 단계에서 미생물은 슬러지에서 나온 VFA(휘발성 지방산) 같은 먹이를 잔뜩 흡수해 PHA로 저장하고, 호기 단계에서는 그 PHA를 에너지로 쓰면서 물을 깨끗하게 만든다.
즉 혐기–호기 사이클과 슬러지 체류시간(SRT)만 세심하게 조절하면, 기존 설비를 크게 바꾸지 않고도 PHA가 풍부한 바이오매스를 얻을 수 있다. 오염을 줄이던 플랜트가 소재를 뽑아내는 ‘도시 바이오리파이너리’로 확장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제 실제 현장에서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여러 사례들로 확인해보자.
현장에서 증명된 사례
이 전환의 현실성은 이미 현장에서 확인됐다. 네덜란드 PHARIO는 풀스케일 하수처리장에서 잉여슬러지를 고함량 PHA 바이오매스로 전환해 연속 캠페인을 수행했고, 이렇게 얻은 PHBV(3HB-co-3HV)가 가공성과 열안정성에서도 기준선을 넘는다는 점을 입증했다.
독일 부퍼탈의 WOW! 파일럿도 하수처리장에 PHA 파일럿 라인을 설치해, 1차 슬러지 유기탄소를 2단 생물공정으로 처리해 PHA를 생산하며, 처리장에서 제품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보여줬다. 이 프로젝트는 기술만이 아니라 시장 진입·정책 장벽까지 함께 정리했다. 초기 경제·환경성(TEA/LCA) 분석은 시장가격과 CAPEX 가정에 민감하지만, 순수배양 대비 약품·에너지 부담을 낮추면서도 상용 등급 물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제시한다.
완전한 공정 교체 대신, 기존 하수처리장에 사이드스트림(보조 라인)으로 슬러지 발효→VFA 공급→PHA 축적 단계를 붙이는 방식도 테스트됐다. 이 접근은 주 공정은 물 정화에 집중하고, 보조 라인에서 PHA 생산을 노리는 설계라서, 리스크가 낮고 부지 여건에 따라 모듈처럼 확장 및 축소하기 좋다. 이 방식은 혼합미생물(MMC)의 강점을 살려 약품·멸균 비용을 줄이면서도 상용 등급 물성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 사례들은 실제 처리장 규모에서 돌려봤고, 배관·슬러지 변동성 같은 현실 변수에도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소재 품질: PHBV 등 제품 후보의 기본 물성이 확인되어 “쓸 만한 소재”로 갈 수 있다는 그림이 보인다. 가격·정책 시나리오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지만, 공공조달·EPR 같은 수요 신호가 붙으면 상용화의 문턱이 확 낮아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공정을 ‘PHA 팩토리’로 바꾸는 운전전략
하수처리장을 ‘PHA 팩토리’로 바꾸는 핵심은 한 줄로 요약된다: 슬러지에서 짧은 지방산(VFA)을 뽑아 “먹이”를 안정 공급하고, 공정은 산소 없음→있음의 ‘Feast–Famine’ 리듬으로 돌린다. 1·2차 슬러지를 짧게 혐기 발효해 아세트산·프로피온산을 확보한 뒤, 혐기 구간 초반에 몰아주고 호기 구간에서 저장된 PHA를 소모하게 하면 저장형 미생물이 우세해진다. 사이클 길이·용존산소(DO)·슬러지 체류시간(SRT)을 정밀 조정하는 것이 관건이며, 기존 EBPR 라인은 리듬이 이미 구축돼 VFA의 ‘짧고 굵은’ 투입만으로도 PHA 함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 호기성 과립슬러지(AGS·Nereda)는 과립 내부 산소 구배와 빠른 침전으로 고부하 운전과 다운스트림 손실 저감에 유리해 대안 카드로 떠오른다.
품질은 PHA 함량(DCW%), 3HB:3HV 비, 분자량/분포, 열특성(DSC·TGA) 등 수치로 관리하며, 프로피온산 비중을 높이면 3HV가 올라 유연성이 개선되는 경향이 보고돼 있다. 현장 적용은 전 공정 개조보다 ‘슬러지 발효→VFA→저장’ 사이드스트림 모듈을 작게 붙여 시험하고, 유입 변동은 VFA 탱크로 완충한 뒤, 추출·정제는 별도 파일럿에서 최적화해 순차 통합하는 방식이 리스크가 낮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다운스트림과 시장 통합: 추출·표준·조달의 세 갈래 과제
PHA 상용화의 다음 관문은 공장에서의 회수·정제(다운스트림), 제품의 표준·인증, 그리고 초기 판로를 여는 정책·조달 신호다. 먼저 회수 공정은 염소계 용매(예: 클로로포름) 의존을 줄이는 쪽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파일럿 스케일 혼합배양(MMC) PHA를 대상으로 염소 프리 추출을 비교한 연구는 알칼리·과산화수소 처리와 에틸아세테이트 조합, 혹은 초임계 CO₂(sCO₂) 기반 물리적 파쇄+용매 단축 조합이 유망함을 보여준다. 핵심은 단가와 안전성, 잔류용매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는 운영장을 찾는 일이다.
두 번째는 표준·인증이다. 포장재 기준의 EN 13432(유럽), ASTM D6400(북미)와 같은 산업퇴비화 규격은 생분해 속도뿐 아니라 금속·독성 잔류, 분해 산물의 식물 독성까지 본다. 유럽바이오플라스틱스의 ‘Seedling’ 인증 스킴은 시험 항목을 표준에 맞춰 묶어두고, 식품 접촉 용도는 별도의 EFSA/FDA 평가를 요구한다. 즉 PHA가 “분해된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용도별 규격—특히 식품·위생 용도—를 통과해야 시장 진입이 열린다.
마지막은 수요 신호다. 유럽은 2024년 ESPR(지속가능 제품설계규정) 발효로 제품 전반의 순환지표 도입을 시작했고, 2025년 PPWR(포장·포장폐기물 규정) 채택으로 공공·민간 조달에서 재사용·재활용·생분해성의 역할을 구체화하고 있다. 지자체 녹색조달과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설계를 연동하면, PHA 같은 바이오폴리머에 예측 가능한 초기 수요를 제공해 단가 하락과 투자 결정을 끌어낼 수 있다. 업계 분석도 “다운스트림 OPEX/ CAPEX 최적화 + 조달 신호”의 동시 작동을 상용화의 관건으로 지목한다.
‘도시 바이오리파이너리’로 가는 체크리스트
이제 필요한 건 복잡한 새 장비가 아니다. 하수처리장의 리듬을 정교하게 조율하고(산소 없는 시간↔있는 시간), 슬러지에서 뽑은 VFA로 미생물의 ‘저금통(PHA)’을 채우며, 회수·정제 공정을 안전하고 저독성 방식으로 다듬는 실무다. 여기에 지자체 녹색조달과 EPR 연계 같은 분명한 수요 신호, 그리고 수처리 운영사–공정 엔지니어링–소재기업이 맺는 오프로테이크 계약이 더해지면, 파일럿에서 본 가능성은 곧바로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수는 더 이상 ‘처리해야 할 비용’만이 아니다. 도시가 스스로 만든 유기탄소를 다시 소재로 되가져오는 회로가 닫히는 순간, 같은 시설이 물을 깨끗이 하면서 동시에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원료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겹치게 된다. 그 전환의 문턱은 기술과 정책, 그리고 파트너십이 함께 낮출 때 가장 빨리 넘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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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하수는 그저 버리는 물이 아니다]
1) Ahuja, V.; Singh, P. K.; Mahata, C.; Jeon, J.-M.; Kumar, G.; Yang, Y.-H.; Bhatia, S. K., “A review on microbes mediated resource recovery and bioplastic (polyhydroxyalkanoates) production from wastewater”, Microbial Cell Factories, 23, —, Article 187, 2024-07.
2) de Carvalho, C. A.; Dos Santos, A. F.; Ferreira, T. J. T.; Lira, V. N. S. A.; Barros, A. R. M.; Dos Santos, A. B., “Resource recovery in aerobic granular sludge systems: is it feasible or still a long way to go?”, Chemosphere, 274, —, 129881, 2021-07.
[현장에서 증명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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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han, M. N.; Uhrig, T.; Steinmetz, H.; de Best, J.; Raingue, A., “Techno-economic assessment of producing bioplastics from sewage”, Interreg NWE WOW! Project Report (WPT1 Deliverable 3.1), —, —, 1–54, 2021-11. https://vb.nweurope.eu/media/16741/1wpt1_deliverable_3_1_pha_tea_final.pdf
3) Werker, A.; Bengtsson, S.; Korving, L.; Hjort, M.; Anterrieu, S.; Alexandersson, T.; Johansson, P.; Karlsson, A.; Karabegovic, L.; Magnusson, P.; Morgan-Sagastume, F.; Sijstermans, L.; Tietema, M.; Visser, C.; Wypkema, E.; van der Kooij, Y.; Deeke, A.; Uijterlinde, C., “Consistent production of high quality PHA using activated sludge harvested from full scale municipal wastewater treatment – PHARIO”, Water Science and Technology, 78, 11, 2256–2269, 2018-12. https://iwaponline.com/wst/article/78/11/2256/65088/Consistent-production-of-high-quality-PHA-using
4) Wupperverbandsgesellschaft für integrale Wasserwirtschaft mbH (ed.), “WPT1: Designing value chains for carbon-based elements from wastewater — A1 State of the Art Report”, Interreg NWE WOW! Project Report, —, —, 1–75, 2019-05. https://vb.nweurope.eu/media/20580/wpt1_wow-state-of-the-art-report.pdf
[기존 공정을 ‘PHA 팩토리’로 바꾸는 운전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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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Vázquez-Fernández, A. et al., “Bioproduction of VFAs from organic wastes by anaerobic fermentation,” J. Environ. Chem. Eng., 10(6), 108004, 2022-12.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2213343722007904
[가장 큰 걸림돌은 다운스트림과 시장 통합: 추출·표준·조달의 세 갈래 과제]
1) Nayır, T. Y.; et al., “Extraction of polyhydroxyalkanoate from activated sludge with a supercritical CO₂-based protocol”, Journal of Biotechnology, 370, —, 1–10, 2023-04.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168165623000147
2) Pagliano, G.; et al., “Recovery of Polyhydroxyalkanoates from Single and Mixed Microbial Cultures: A Review”, Frontiers in Bioengineering and Biotechnology, 9, 636241, 2021-02.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7902716/
3) Salvatori, G.; et al., “Chlorine-free Extractions of Mixed-Culture Polyhydroxyalkanoates Produced from Fermented Sewage Sludge at Pilot Scale”, Industrial & Engineering Chemistry Research, 62, 44, 16422–16431, 2023-11. https://pubs.acs.org/doi/10.1021/acs.iecr.3c02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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