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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기후변화-환경

[식물 전투 시리즈 2] 뿌리로 연결된 사회 - 식물 vs 식물 (그리고 협력)

by R.E.F. 27기 조재경 2025. 11. 22.

[식물 전투 시리즈 2] 뿌리로 연결된 사회 - 식물 vs 식물 (그리고 협력)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27기 조재경

 

땅속에서 이어진 관계

숲은 서로 다른 식물이 빽빽하게 자리한 경쟁의 장처럼 보인다. 햇빛, 물, 영양분을 얻기 위해 식물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가지를 뻗으며 싸운다. 하지만 땅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식물은 경쟁자인 동시에 협력자이다.

토양 속에서는 균근균, 세균, 뿌리들이 복잡하게 얽혀 식물의 사회망(plant social network)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의 인터넷과 비슷하다. 마치 인터넷처럼 연결망을 통해서 식물들은 자원을 나누고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소통은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하고 지탱해주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한 식물의 경쟁 전략

식물의 경쟁은 치열하다. 햇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식물은 파이토크롬(phytochrome)이라는 광수용체를 통해 주변의 그늘을 감지하고, 줄기를 빠르게 신장시켜 빛을 차지한다. 파이토크롬은 단순히 빛을 감지하는 센서가 아니다. 종자 발아, 잎과 줄기의 생장, 엽록체 발달, 광주기성(circadian rhythm), 음지회피(shade avoidance), 개화(flowering) 등 식물의 거의 모든 생장과 발달 과정에 관여한다. 즉, 빛의 신호를 읽고 이를 생장 전략으로 전환하는 식물의 핵심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식물의 광 반응성은 농업 생산성과도 깊게 연결된다. 파이토크롬의 작용을 조절하면 작물의 생장 속도나 개화 시기를 조절할 수 있고, 이는 바이오매스 생산량을 높이는 데도 응용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연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흡수를 촉진해 기후 위기 완화에 기여할 가능성도 지닌다. 결국 식물의 생리학적 반응은 지구의 탄소 순환과 맞닿아 있다.

또한, 타감작용(allelopathy)을 통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두나무는 저글론(juglone)이라는 물질을 분비해 주변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이처럼 식물은 각기 다른 전략을 세우며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만으로는 자연은 유지되지 않는다. 경쟁 뿐만 아니라 협력의 질서가 함께 작동해야지만 유지된다.

 

경쟁을 넘어, 협력의 네트워크

앞서 언급했듯, 식물 세계에서도 인간 사회의 인터넷과 유사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이를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 부른다. 이는 균근균(mycorrhizal fungi)이 여러 식물의 뿌리를 실처럼 얽어 연결해 만든 지하 생태 네트워크로, 식물은 이를 통해 영양분과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연결망 속에서 식물들은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서 협력한다. 병원균이 침입하면 인근 식물에 화학적 경고 신호를 보내 방어 유전자 발현을 유도하고, 빛이 부족한 어린 묘목에게는 탄수화물을 나누어 생존을 돕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 이타적 행위는 단일 개체로서의 생존을 넘어 생태계 전체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유지하게 한다. 이 개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오늘날 생태학계에서는 “숲은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관점이 점점 견고한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비과학적인 낭만으로 여겨졌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임업은 “나무를 빽빽이 심으면 목재를 더 얻을 수 있다”는 단순한 계산에 머물러 있었고, 단일수종 조림, 비료·제초제 남용, 무분별한 벌목이 숲의 다양성을 급격히 파괴했다.

이런 인식의 대전환을 이끈 인물이 바로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 교수다. 1997년 네이처에 실린 그녀의 연구는 숲의 나무들이 뿌리와 균근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소통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실증했다. 네이처는 이를 “Wood Wide Web”이라 명명했고, 이 발견은 숲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시마드의 연구에 따르면 숲의 중심에는 어머니 나무가 존재한다. 이 거대한 고목은 탄소와 질소 같은 영양분을 어린 나무에게 보내고, 뿌리 네트워크를 통해 숲 전체의 건강을 조율하는 소통의 허브 역할을 한다. 그녀는 “나무는 뿌리를 통해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인지하고 반응한다”고 말한다. 마치 인간의 신경세포가 축삭과 시냅스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듯, 숲의 나무들은 진균 네트워크를 통해 생태적 시냅스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는 단순한 생태 발견을 넘어 철학적 메시지를 던진다. 숲은 개별 나무의 경쟁장이 아니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협력하는 거대한 생명 공동체다. 콩과식물이 리조비움(Rhizobium)과 공생해 질소를 고정하고, 이 과정이 토양 비옥도 향상과 화학 비료 사용 감소로 이어지는 것과 같이, 이러한 식물 간 상호의존적 관계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탄소 순환, 그리고 기후 회복력 강화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결국, 우드 와이드 웹은 숲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식물들은 고립된 존재가 아닌, 서로를 감싸며 살아가는 지구 생태계의 숨결이다.

 

식물 공동체가 주는 생태적 통찰

이러한 식물의 연결된 생존 전략은 인간 사회에 성찰의 메시지를 던진다. 무분별한 벌목, 토양 오염, 도시화로 인해 우리는 이 복잡한 식물 네트워크를 끊어왔다. 그 결과, 토양 미생물 다양성은 급감하고, 농업 생태계의 회복력은 약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처는 아직 늦지 않았다. 식물들의 협력 모델을 복원한다면, 친환경 농업, 생태 복원, 기후 회복력 강화 등 다양한 환경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식물의 네트워크는 단순한 생태 현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지속가능한 지구 시스템의 축소판이다.

 

식물의 협력에서 배우는 공존의 지혜

식물은 말하지 못하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뿌리로 그들만의 세상을 끊임없이, 그리고 조용하고 빠르게 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경쟁과 협력이 조화를 이루는 식물의 사회는 인간 사회가 놓치고 있는 공존의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이러한 식물의 뿌리 네트워크를 이해하고 지키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지구 생태계의 면역력 또한 회복될 것이다. 땅속에서 이어진 그 조용하지만 강력한 협력은 결국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되어준다. 식물의 생태적 지혜를 배우는 일은 곧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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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김응빈,"지구 온난화에...'WWW' 땅 아래 '곰팡이 네트워크"가 위험하다.",경향신문, 2020.09.17, https://www.khan.co.kr/article/202009172136005

2) 권오길,"식물의 향기 속에 숨은 무서운 진실",한겨례, 2012.04.02,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526295.html

3) 백하연,"생명이 숨 쉬는 농경지, 논 생태계를 다시보다", 환경일보, 2025.07.08, https://www.hkb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0744

4) 이근영,"온난화 대처할 수 있는 식물의 온도센서 찾았다.",한겨례, 2019.01.15,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78492.html

5) 이영경,"우드와이드웹'으로 연결된 숲...'생각하는 나무'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경향신문, 2023.11.24, https://www.khan.co.kr/article/202311241153001

6)  이현건," 도울 것인가, 싸울 것인가, 이용할 것인가…식물들의 거대하고도 경이로운 네트워크!", 대학지성, 2024.02.25,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94

7) 임근호,"숲 속 나무들은 영화 '아바타'처럼 모두 연결돼 서로 돕고 산다.", 2023.11.24,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1124147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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